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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여보! 아버님 댁에 소화기 한대 놔 드려야겠어요

소방공무원은 30분 일찍 출근을 한다. 그들은 왜? 일반 공무원들보다 하루 일과를 일찍 시작하는 것일까?

소방공무원은 매일 아침에 휴일도 빠짐없이 소방 장비점검을 실시한다. 출동 현장에서 구급차에 산소가 떨어졌다면, 소방차에 물이 없다면 아! 상상하기도 힘든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출동 현장에서 내 장비가 고장을 일으켜 작동을 멈춘다면 한 사람의 귀중한 생명이 구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30분 일찍 시작한다.

‘모두가 잠들어 있는 새벽 시간이다. 새벽 3시9분 화재출동 방송이 적막을 깨고 사무실에 가득 울려 퍼진다. 지령 수보대에 모여 모니터를 쳐다보는 대원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역력하다. 화재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한 대원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순식간에 차고를 향해 뛰기 시작한다.

불길은 새벽어둠을 모두 태워버리겠다는 듯이 맹렬히 타오르고 있다. 우리는 물을 뿌리며 소방호스를 잡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 거세어진 불길은 빨갛게 달구어진 혓바닥을 길게 내밀고 잡아먹을 것처럼 날름거리고 있다.

두렵기만 하다. 하지만 뒤 따라오는 후배와 같이 물로 불과 연기를 몰아가면서 바닥에 엎드려 한발 한발 기어서 들어간다. 천장에서는 달구어진 흙무더기가 ‘후드득’ ‘후드득’ 두려운 소리를 내며 쉼 없이 떨어져 내린다. 목덜미가 불붙는 것 같다. 뜨거운 열기와 연기 때문에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곳에서 공기호흡기의 ‘쌕’ ‘쌕’ 거리는 거친 숨소리만이 들린다.

할아버지는 안방 문턱 앞에서 엎드린 채로 소사 하셨다. 우린 불길을 모두 잡고서야 할아버지가 오만 원 지폐 한 묶음을 손에 꼭 쥐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지금까지 숱한 화재현장을 누비면서 많은 죽음을 목격했지만 돈 때문에 뜨거운 지옥 불에 갇혀 불쌍하게 숨을 거두신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그놈의 돈'이 뭐라고 돌아가시다니 말이다.(이진복 “돈은 꼭 안전한 은행에 보관하세요!”)

소방기관은 대한민국의 모든 재난안전의 총제적인 책임기관으로 예방과 대비, 대응, 복구를 담당하는 첨병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러나 소방공무원들의 불철주야에 걸친 노력에도 불구하고 화마로부터 모든 생명을 구할 수는 없다.

입동을 지나 손등으로 성큼 다가온 겨울의 초입이다. 이맘때쯤이면 생각나는 추억의 광고 카피가 하나 있다. ‘여보! 아버님 댁에 보일러 놔드려야겠어요’ 부모님 댁에 따뜻한 보일러를 놔드리는 것도 좋겠지만 “여보! 올해는 아버님 댁에 단독경보형 감지기를 설치하고 소화기를 한대 놔 드려야겠어요,”라고 바뀌었으면 한다.

홀로 계시는 부모님들의 안전한 겨울나기를 간절히 원해본다.

충남 계룡소방서 소방위 이진복

김백수 기자  bsk729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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